드림 체이서-03

"으음..."

눈이 침침하고 심하게 눈꺼풀이 무거웠다. 눈을 뜨기도 전에 눈꺼풀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환한 빛에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살아있는건가...?"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소년이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투속에는 살아있다는 안도감 보다는 어째서 죽지 않았는가 하는 한탄이 더 많이 느껴지고 있었다. 소년이 깨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나와 유키리. 두사람이 들어왔다. 유카리는 병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소년을 향해 외쳤다.

"Welcome to future!! 500년 후의 세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유카리의 외침에 유나는 심하게 당황했다. 방금 깨어난 사람에게 하필이면 충격을 줄 말부터 꺼내다니... 정말인지 도대체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 궁금한 녀석이었다. 이런 섬세함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의사가 되었을까? 그것도 그냥 돌팔이 의사 같은게 아니다. 명의라는 말이 나와도 모자랄 정도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미스테리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500년...?"
"그래, 500년. 지금이 신세력(新世曆) 278년이니 네가 있었을 서력 2006년을 기준으로 했을때 500년 후. 야~ 그나저나 정말 놀랬다고. 설마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미싱 타임(missing time)'을 볼 수 있다니 말이야."
"미싱 타임... 이라뇨?"

자신을 지칭하는 듯한 '미싱 타임'이란 단dj에 소년은 질문을 던졌다. 소년의 질문에 유카리는 즐겁게 입을 열었다.
"'미싱 타임'이란 말이지, 말 그대로 시간을 잃어버린 존재를 말하는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본래 있어야 할 시간을 벗어나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게 된 사람들이나 생물을 일컫는 말이야. 물론 기계장치도 있긴 하지만 그경우에는 현재의 기술력으로 복원이 불가능한 일부 기계장치를 말하는거야~"
즐겁게 말하는 유카리를 보던 소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절 살려냈나요?"
"뭐... 일단은 그럴려나?"

유카리는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엄연히 말해서 완전히 살려낸 상태가 아닌 탓이었다. 아직 냉동수면에 의해서 손상된 세포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을 뿐더러 희귀질병인 메두사가 아직도 그의 몸을 갉아먹고 있는 탓이었다.

"그냥 내버려두지 그랬어요."
"뭐...?"

소년이 내뱉은 말에 순간 유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말을 계속 이었다.

"어차피 강제로 냉동수면에 들어가게 된 거였는데... 어차피 내게 살아있을 의미따윈..."

쾅!!

소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나의 주먹이 소년의 뒤에있던 벽에 틀어박혔다. 소년 놀란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불쾌감이 가득한 얼굴을 한 유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뭡니까 갑자기."

소년의 무척이나 담담한 반응에 유나는 폭발하는 화를 가까스로 집어삼키며 소년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이봐 너, 함부로 죽는다는 소리 하지마! 네가 죽음에대해 뭘 안다고 죽는다는 거야!!"
"두번째네요. 저에게 죽음에 대해 뭘 안다냐고 말한 사람은..."

유나의 말에 소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요즘 인간들과 함께 하나의 객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안드로이드들도 이만큼 담담하지는 않으리라... 인형과도 같은 반응에 유나는 화가 한층 더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초인적인 인내로서 가까스로 화를 참아낸 유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년에게 말했다.

"잘들어... 너는 아직 완전히 살아난 게 아니야. 그러니까 죽을 생각은 꿈에라도 꾸지 마... 조금이라도 자살을 시도한다고 생각되면 그대로 전신을 박살을 내버리겠어...!"

유나는 살벌한 말과 함께 소년을 쏘아본 후 병실을 나섰다. 과도할 정도로 죽음이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나를 보며 소년은 담담히 중얼거렸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나름...!"

그때 소년에게서 조금은 묘한기세가 흘러나왔으나 나가버린 유나를 신경쓰고있던 유카리가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유카리가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기세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유카리는 친구가 저지른 참상(?)을 보며 투덜거렸다.

"정말인지... 아무리 친구인 내가 원장이라지만 너무한거 아냐? 그나저나 너도 참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눈하나 깜짝 안하다니..."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벽을 박살내는 주먹이 스쳐지나갔는데도 눈하나 꿈쩍 안하는것은 꽤나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소년은 유카리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일에는 나름 익숙하니까요."
"그나저나 너 이름이 뭐야? 떠돌이 강아지 같은게 아닌이상 이름이 있을거아냐? 아무리 내쪽이 연상이라지만 계속 '너'라고 하는것도 좀 그렇고 말이야..."

상식과 예절이 있는 어른인 유카리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너'나 '꼬마'같은 단어로 불리는 꽤나 사양하고 싶은 소년이었다.

"확실히 그렇게 불리는건 조금 그렇네요... 하지만 곧 죽을 사람의 이름을 묻는것도 좀 재미없지 않아요?"
"네가 이름을 대야하는 이유는 세가지야. 첫째. 이 병원의 규칙이고 둘째. 내가 알고싶고 셋째. 묘비에 새겨둘 이름이 필요하니까."
"헤에, 의사가 그런말을 하다니... 살벌하네요."

소년의 말에 유카리는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나 병원원장이긴해도 야매출신인데다가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의사가 된게 아니거든... 단순히 지속적으로 많은 돈이 필요했을 뿐이야"
"흐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죠. 그것보다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듯한데..."
"기분탓이야. 어쨌든 이름이나 말해"

유카리의 재촉에 소년은 조용히 자신의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대답했다.

"이 서현... 잠들기 전에는 이 이름으로 지내고 있었죠."
"그거면 되겠네"

소년... 아니 서현의 대답에 유카리는 무표정하게 펜을 휘갈겼다.


유카리가 나가기 무섭게 서현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 처절한 싸움속에서 적의 동정에 의해 살아남았다. 그것도 그냥 적이었으면 차라리 나을뻔했다... 자신을 속이고 사부를 속인 배신자. '그녀'의 동정에 의해서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남아버린 것이다. 뭐... 그녀로서는 아마 내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만. 만약 고통에 몸부림 치기를 바래서 그런거라면 그녀는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사부의 복수도 하지 못하고 어딘지 모를곳에서 어째야 할지 모르는 채 죽음의 공포를 기다린다...
확실히 보통사람이라면 미치다 못해 자살할 정도의 공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현으로서는 죽음의 공포따윈 없었다. 그저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못하고 죽어간다는게 아쉬울 뿐.

"하지만 괴롭다는건 확실하지..."

아무리 덤덤하다고 해도 괴로운건 괴로운 것이다...
분명히...

by 히무라 | 2010/02/04 22:21 | after war Chronicles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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