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체이서 02

몇일 뒤 한성시(구 서울시) 주점
평소에도 요란스러운 주점, 하지만 오늘은 한가지 소문으로 인해 분위기가 무척이나 달아오르고 있었다.

"야, 너희들 그 소문 들었냐?"
"무슨 소문?"

한 남자의 말에 거기에 몰려있던 남자들은 순식간에 모여들며 물었다. 그들에게 있어 소문이란 중요하면서도 재미있는 꺼리가 많은 유흥거리인 탓이었다. 흥이 올랐는지 말을 꺼낸 남자는 맥주를 한껏 들이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헌터인 유나 알지?"
"파검(破劍)의 검희?"
"그 혈무(血霧)의 사신이라고도 불리는?"
"그래, 그 아가씨."

남자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뭐... 아가씨라고 하기엔 너무 괄괄하지만..."
"게다가 너무 짜."
"뭐, 뭐 넘어가고..."

남자의 말에 모두는 내뱉던 말을 그만두고 남자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자 남자는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실은 얼마전에 의뢰에 나섰던 유나가 돌아왔어."
"그거야 뭐 아는 사람들 다 아는 거 아닌가?"
"그런데 말이야. 이번엔 좀 특별해."

"뭐가? 설마 왕창깨졌다던가...?"

"설마, 유나는 헌터길드에서 인증한 몇 안되는 S랭크의 헌터라고. 그런 녀석이 어디서 왕창 깨지거나 할 리가 없잖아. 소문으로만 들리는 전설의 용병집단 흑성전기(黑星戰騎)라면 또 모를까?"

흑성전기(黑星戰騎), 소문으로만 전해져오는 전설의 용병집단으로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전투력은 각각이 군단 하나, 혹은 요새 하나와 필적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보질 못하고 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없기에 단순한 전설 취급받고있는 용병집단이었다.

"그런 전설이 왜 나와? 어쨌건 이 이야기는 그녀가 깨졌다는 이야기 보다 더 흥미롭고 믿기 힘든 이야기지."
"도대체 어떤 이야기 이길래?"
"뭐냐면..."
"뭐냐면?"

남자의 말끌기에 사람들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느낀 남자는 그제서야 말을 시작했다.

"바로 그녀가 남자를 데리고 돌아왔기 때문이지! 그것도 소년으로!"
"에엑?!!!!!"

남자의 말에 거기있던 사람들 모두는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에게 있어 유나와 남자의 조합은 세상 천지가 뒤집어져도 있을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던 탓이었다.

"농담이지?!"
"진짜야, 나도 혹시나 싶어서 수소문 해봤는데 병원에서 간호사일을 하는 친구녀석의 여친이 정말 유나가 남자를 데려오는 걸 봤다더군."
"세상에..."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시선을 밖으로 향하며 본인이 듣는다면 곧장 무례하다는 말이 나올 말들을 해댔다.

"그런데 데려온 소년은 정신을 잃고있던 상태라더군."
"그래? 혹시 어디 다친건가?"
"아니면 그 아가씨가 납치... 아니 보쌈한건지도..."
"보쌈? 그 몇백년전에 유행했다는 그?"
"그래, 솔직히 그 괄괄한 아가씨에게 갈 남자가 몇명이나 되겠냐? 결국 안되니까 좀 이쁘장한 녀석으로 골라 납치... 아니 보쌈 했겠지"
"그거 말되네. 결국 그 아가씨도 외로웠나 보지?"
"뭐, 그럴지도... 어차피 20살 소녀잖아. 자기랑 같은 또래의 아가씨들은 다 남자 하나씩 꽤차고 있는데 혼자서 솔로니... 역시 외로웠는지도..."
"하지만 그 성격에 갈 남자가 누가 있겠냐? 안그래?"
"그건 그래, 아하하하하하-"

쿠당탕!

모두가 웃고있는 사이 사람들이 몰려있던 테이블이 두동강이 나 버렸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에 기대고 있던 사람들도 덩달에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요란하게 굴러버린 사람들은 모두들 아픈부위를 문지르면서 투덜거렸다.

"아야야..."
"도대체 무슨 일..."

불평하던 사람들은 문득 등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느낌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무지 살벌한 눈초리로 자신들을 바라보고있는 서슬퍼런 사신을...

"자, 남의 험담의 대가가 무엇인지는 알 고 있겠지?"

어느새 나타난 유나는 자신의 애검인 시시마루를 집어 넣고 있었다. 용서 해 주겠다는 것이 아닌 언제라도 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벌벌떨면서 유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미안! 잘못했어!"
"용서해줘!!"
"문답무용!!!!"

그날 화난 S급 헌터 유나의 난동으로 술집의 장사는 막을 내려야만했다.

몇시간 후 한성시 자경대

"자, 여기 네 검"
"아 고마워 혜경아"

자경대 여대장인 혜경으로부터 검을 받아든 유나는 미안한 얼굴을 하면서 대답했다. 혜경은 그런 유나를 보면서 한마디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진짜... 유나 넌 좀 자각을 가져... 넌 몇 안되는 S랭크의 헌터라고. 너는 이미 존재 자체가 전략병기나 다름 없단 말이야! 그런데 칼 같은거 막 휘두르지 말란 말이야! 게다가 칼집은 왜 휘둘렀어! 네 칼집에는 특수폭약이 들어있다며! 그딴걸 왜 휘둘러! 왜!!!!"
"미안! 미안하다니까!!!"

혜경의 설교에 유나는 술집에서와는 달리 약한 모습을 보이며 혜경에게 빌고 또 빌었다. 지은죄가 있다보니 반항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헌터 규칙중에서도 자경대와는 함부로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는 조항이 있었다. 마찰을 일으키게 되면 그만큼 귀찮아 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 이외에도 유나의 경우 혜경과는 사적으로도 무척이나 친한관계였지만 말이다.

"진짜... 너란 애도 참... 아무리 열받아도 그렇지... 그런 위험천만한 흉기를 휘두르면 어떻하니... 으휴..."
"미안하다니까... 진짜..."
"예휴... 정말... 그나저나 그 남자애는 진짜 어떻게 된 일인거야? 정말로 납치한거 아냐?"
"너까지 그러기냐!!!"

혜경의 말에 유나는 다시한번 폭발할듯한 반응을 보이며 외쳤다. 그것을 본 혜경은 기묘한 표정으로 유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게 너는 남자랑 인연이 없는 녀석이잖아. 그런 네가 갑자기 미소년을 데려오다니... 당연히 그런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아? 어지간한 무력으로는 너한테 반항도 못하니까 말이야."
"크으..."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전부다 옳은 말인 탓이었다. 남자같은 괄괄한 성격 때문에 일을 제외하고는 남자랑 엮일 일이 없고 무력도 어지간한 남자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이런 여자에게 누가 다가오겠는가? 그러니 납치 의혹이 돌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진짜... 이번 의뢰를 행하던 도중 발견한 연구소에서 냉동수면으로 잠들어 있던 것을 구해온 것 뿐이라고!"
"알았어, 알았어. 믿어줄께."

말과 표정이 다른 혜경의 행동에 유나는 이마를 치면서 절망했다. 그리고는 그 소년을 괜히 구했다는 후회마저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구해버린 것이기에 이 이상 후회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유나는 혜경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터벅터벅 걸으며 소년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한성시 시립중앙병원

"어때? 그 아이의 상태는?"
"글쎄... 좋달까 나쁘달까..."

유나의 물음에 유나의 친구이자 한성 시립중앙병원의 원장인 모리시마 유카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책상위에 널린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한장의 서류를 찾아내 유나에게 건냈다.

"뭐야 그건?"
"그 아이의 진단서."
"내가 봐도 모르잖아."
"아, 그렇지..."

유나의 말에 유카리는 깜빡했다는 듯 손바닥을 치면서 중얼거렸다. 유나는 그런 유카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약간 맹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 유카리는 유나에게 건낸 진단서를 다시 가져온 후 대충요약해서 읽기 시작했다.

"일단 심박이나 이런저런건 모두 정상이야. 다만 몇십년 이상 냉동수면을 한 탓인지 이런저런 세포조직 손상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중요부위는 없는데다가 그정도는 병원에서 금방 고칠 수 있거든. 그런데 문제는..."
"문제...?"
"어, 잘 봐."

유카리는 컴퓨터를 조작해 벽면에 있는 디스플레이에 영상이 뜨도록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벽면의 디스플레이가 켜지며 뭔가의 영상이 떴다.

"이 영상은 아까 소년에게서 채취한 혈액을 확대 분석한거야. 그리고 이게 그 문제지."

유카리는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러자 몇번의 과정을 거치며 영상이 수십배... 아니 수천배로 확대되었다. 확대된 영상속에서 예전에 본 혈액 사진속에서 볼 수 없었던 사각형이 보였다. 유나는 유카리를 바라보며 저 사각형에 대해 물었다.

"저건 뭐야? 전에 본 혈액사진에선 못봇것 같은데..."
"세균이야. 그것도 극히 희귀하고도 희귀한 세균..."
"세균...?"

유나의 물음에 유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세균. 질병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니 500년 전에 갑자기 유행했던 불치병 메두사의 세균이였어. 천천히 말초신경부터 잠식해 들어가 감각을 마비. 말기에는 세포마저 변이시켜 감염자를 돌로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병이지."
"감염자를... 돌로 만들어버려?"

순간 유나는 수많은 냉동수면 캡슐이 있던 공간에서 냉동캡슐안에 들어있던 사람형태의 돌조각들을 떠올렸다.

"설마...? 그래서였나..."
"왜 그래 유나?"
"아니... 이 소년을 구한 곳에서 이상하게도 냉동캡슐안에 들어있는 사람형태의 돌조각이 많았거든... 그게 메두사 때문이었나..."
"흐음... 어쨌든 이 소년은 지금 그 메두사에 감염되어 있어. 그리고 위험해. 오랬동안 잠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해동된 탓인지 세균활동이 활발해 져 있거든. 과거 진료 자료와 지금 활동 상황으로 볼때..."

유카리는 대답하기 힘든지 검지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고민을 마쳤는지 결심한 듯한 표정을 한 유카리는 유나를 향해 오른쪽 손을 펼쳐보였다.

"5...? 설마 5일이라는건 아니겠지?"
"맞아. 5일... 그 안에 메두사의 치료제를 맞지 않으면 일주일 후 자정에는 돌이 된 소년을 볼 수 있을걸?"
"진짜... 구해도 골치아픈 녀석을 구했군..."

유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한번 구한이상 끝까지 구하지 않으면 찜찜하다. 한번 맡은 일을 끝내지 않으면 찜찜하다. 일단 한번 일을 하게 된 이상 어떤 결과가 나오든 끝까지 간다. 그것이 S급 헌터인 유나의 모토였다. 중도 포기란 애초에 그녀의 선택지에서 없었다.

"그래서, 그 치료제는 있어?"

유나의 물음에 유카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메두사는 이미 250년 전에 완전히 멸종된 병이라서 말이야... 아... 치료제가 있는 곳이 있긴 있네."

유카리는 재빨리 키보드를 두들기며 디스플레이에 찾아낸 정보를 띄웠다.

"우선 있는 곳은 두곳. 정부에서 특별관리하는 물품창고랑 삼라 컴퍼니인가..."

유카리에 말에 유나는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둘다 껄끄러운 장소였던 탓이었다. 물론 둘중 어느곳을 가겠냐고 묻는다면 유나는 주저없이 삼라컴퍼니 쪽으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삼라 컴퍼니도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일단 국내 제일의... 아니 세계적으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거대기업. 물론 기업인 이상 이익이 있으면 팔기는 하겠지만 솔직히 저런 희귀물품이라면 얼마나 높은 가격을 부를지 몰랐기에 이래저래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둘다 귀찮은 곳이군..."
"너라면 정부쪽에 끈이 있지않아?"

유카리에 말에 유나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농담마. 아무리 친구라지만 한번만 더 그 얘기 꺼내면 패버린다..."
"알았어 알았어..."

유나의 말에 유카리는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유카리의 말에 유나는 험악한 표정을 풀었다.

"그나저나 그 소년... 아직 안깨어났어?"
"글쎄... 아직까지 변화는 없네... 아!"
"왜 그래?"

갑작스런 유카리의 탄성에 유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깨어났어."
"누가?"
"그 소년 말이야."

유카리는 재빨리 의자에 걸쳐둔 백의를 입고 재빨리 원장실밖으로 나섰다. 유나도 유카리의 뒤를 따라서 원장실을 나섰다.

by 히무라 | 2009/06/11 23:04 | after war Chronicles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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